아이를 낳고 해외에서 살면서 외롭다고 느낀 순간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서러운 순간은 늘 아이가 아플 때였습니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해냅니다. 혼자 아이를 보고, 밥을 만들고, 장을 보고, 하루를 보냅니다. 힘들어도 이것이 내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버틸 만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날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하루였습니다. 아이는 갑자기 밥을 먹지 않았고, 먹이려는 나와 먹지 않으려는 아이 사이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아이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체온을 재니 39도가 넘었습니다.
숫자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응급실을 가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도 되는 건가.
괜히 갔다가 몇 시간씩 기다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만약 기다렸다가 더 심해지면?
결국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갔습니다.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기 전까지
응급실에 도착하니 내 아이와 비슷하게 아파 보이는 아기도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피를 많이 흘리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나는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안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렸습니다. 아이를 달래고, 체온을 확인하고, 다시 달래면서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는 응급실까지 올 정도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는 누군가가 아이를 직접 보고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놓치고 있는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계속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에 확신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상태를 지켜보고, 열을 내려주고, 수유를 계속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의사가 아이를 봤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안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진료가 끝난 뒤에도 무언가를 등록하기 위해 다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지 않으면 그날의 방문 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는 열로 축 처져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집을 나오는 바람에 분유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 아이를 안고 또 한 시간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기록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유를 하고 아기용 타이레놀을 먹였습니다.
이제 좀 자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진짜 긴 밤이 시작됐습니다.
코가 막히고 목이 부은 아이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습니다. 눕히기만 하면 울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아기띠에 넣고 안은 채 재웠습니다.
겨우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 다시 울었습니다.
또 안았습니다.
또 재웠습니다.
또 깼습니다.
그렇게 이틀 밤을 보냈습니다.
몇 시간을 잤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가 울면 일어나고, 안고, 먹이고, 열을 재고, 다시 재웠습니다.
그 며칠 동안은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감각조차 없었습니다.
아이가 나으니 이번에는 내가 아팠습니다
다행히 나흘 정도 지나자 아이가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떨어지고 표정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서 옮은 것인지 똑같은 증상이 찾아왔습니다. 열이 나고,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났습니다. 목 안은 심하게 부어서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고,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습니다.
몸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 정도로 아프면 그냥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울자 아이는 평소처럼 일어났습니다.
기저귀를 갈아야 했습니다.
먹여야 했습니다.
울면 안아야 했습니다.
재워야 했습니다.
아직 이유식을 먹던 아이였기 때문에 밥도 따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내 목은 아파서 음식 하나 제대로 삼키지 못하면서도 나는 주방에 서서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픈 아이는 그것마저 먹지 않았습니다.
내가 먹을 밥을 만들 힘은 없는데 아이 밥은 만들었습니다.
나는 밥을 삼킬 수도 없는데 이유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아이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너무 아팠고, 너무 피곤했고, 너무 오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아픈 것은 사치였습니다
그때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의 병원이 더 좋다거나, 해외의 의료 시스템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때 제가 그리웠던 것은 병원이 아니라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랑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아침이면 출근해야 했습니다. 신랑이 집에 없는 동안에는 아픈 아이와 아픈 제가 집에 남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 있었다면 엄마든 가족이든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나 너무 아픈데, 잠깐만 아기 좀 봐줄 수 있어?”
두 시간만이라도 아이를 맡기고 자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만들어준 따뜻한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뒤, 이불 속에 들어가 아무 걱정 없이 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가까이에 없었습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서러웠던 건 어쩌면 이런 순간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혼자서도 꽤 많은 것을 해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아프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그 거리가 갑자기 아주 멀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프면 그냥 아팠습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됐고, 집안일을 미뤄도 됐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됐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 아픈 것에도 책임이 따라왔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이의 하루까지 함께 멈춰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별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플 때 아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아이가 아플 때 유난히 서러웠던 이유는 아이의 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번에는 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에도 엄마의 하루는 계속된다는 것.
그 시절의 저에게는
마음 놓고 아픈 것조차 사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