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갈라진 집 모형과 아이의 장난감

남편은 아이를 낳은 뒤 두 번 이혼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출산 후 양가의 도움 없이 육아를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따뜻한 밥을 둘이 마주 앉아 먹는 것도 어려웠고, 밤에 몇 시간 연속으로 자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취미생활도, 둘만의 시간도,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거기에 문화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랐고,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서로에게 익숙한 언어도 달랐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넘길 수 있었던 차이들이, 둘 다 지쳐 있는 육아 속에서는 자꾸 부딪혔습니다.
그런데 저는 싸우는 것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소리가 높아질 것 같으면 멈췄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와도 삼켰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해야지.
아이가 없을 때 이야기해야지.
그렇게 미뤄둔 말들이 하나씩 쌓였습니다.

그에게서 ‘이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싸우던 중 남편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산 후 2년 동안 두 번.
저도 화가 났고, 저도 지쳤고, 저 역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남편보다 아이가 먼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늘 있던 한 사람이 없는 집은 아이에게 어떤 모습일까.
주말마다 엄마와 아빠의 집을 오가게 된다면 어떨까.

저는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라는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은 안전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꾸 한발 물러섰습니다.

나에게 이혼은 싸울 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이혼을 이야기할 때마다 서러웠습니다.
싸움의 끝에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저에게는 마치 협박 카드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네가 계속 이러면 우리 관계는 끝날 수도 있어.’
그 말을 들은 뒤에는 더 조심하게 됐습니다.
어떤 말을 하면 또 싸움이 될지 생각했고, 감정이 올라와도 최대한 절제했습니다.

아이 앞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고, 또다시 그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관계를 지키려고 말을 아낄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서러운 것은 이혼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아이를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저에게 이혼은 부부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일상이 바뀌고, 아이가 알고 있던 가족의 모양이 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순간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저도 생각합니다.
아이만 아니었다면 나도 그 말을 했을까.
더 이상 못하겠다고, 나도 끝내고 싶다고 말했을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지금의 저는 그 질문에 저 혼자만 넣어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행복한지보다 아이가 행복한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내가 얼마나 서러운지보다 이 선택이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제가 더 많이 사랑해서인지, 더 많이 참아서인지, 아니면 단지 더 두려워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남편이 두 번 그 말을 꺼내는 동안, 저는 두 번 모두 삼켰습니다.

그에게 이혼은 우리 둘의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아이까지 포함된 사람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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