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한동안 남편이 싫었습니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좋은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별것 아닌 말에도 서운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일에도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편하게 앉아 있는 모습도, 먼저 잠드는 모습도, 혼자 외출하는 모습도 괜히 미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게 되었을까.

잠을 잃고 나니, 나도 조금씩 사라졌다

아이를 낳고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잠이었습니다.
밤마다 몇 번씩 잠에서 깼습니다. 그렇게 쪼개서 잔 시간을 모두 합쳐도 세 시간, 많으면 네 시간 정도였습니다. 그런 생활이 며칠도, 몇 달도 아닌 거의 일 년 반 동안 이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항상 공중에 조금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분명 깨어 있는데 완전히 깨어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생각은 느려지고 감각은 무뎌졌습니다.

한 번은 운전을 하다가 실수로 반대 방향 차선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단순히 조금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그런 밤들이 계속되다 보니 남편이 먼저 잠드는 모습조차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잠을 자는 것이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지쳐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편하게 잠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거울 속 나는 너무 달라져 있었다

출산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출산 중에도 괜찮았던 얼굴 피부가 오히려 출산 후 갑자기 뒤집어졌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잘 먹지도 못하고, 쉴 수도 없는데 거울 속 얼굴까지 낯설어지니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외출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출산 후에는 호르몬도 크게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저는 그런 이유를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몸도 마음도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남편은 너무나 멀쩡해 보였습니다. 물론 남편의 삶도 달라졌고 그 역시 처음 아빠가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예전의 나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데, 남편은 여전히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습니다.

왜 당신은 여전히 당신 같은데,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지.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샤워하는 것조차 자유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샤워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자유였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제 안에 이렇게 큰 모성애가 생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아이가 너무 소중해서 저는 스스로 하루 스물네 시간을 긴장한 채 살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먹은 것을 토하기도 했고, 어느새 다른 곳으로 기어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울기 시작하면 무엇이 불편한지 찾느라 온 신경이 아이에게 향했습니다.

마음 놓고 샤워를 하는 것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도, 화장실에 잠깐 혼자 있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직접 아이를 낳고 키워보기 전에는 저 역시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그 정도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혼자 외출하거나, 아무 걱정 없이 샤워를 하거나,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아주 평범한 모습조차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부러움이 이상하게 화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대단한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트밀 라떼 한 잔을 식기 전에 천천히 마시는 것. 샤워를 하면서 좋아하는 향의 바디 스크럽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조금 오래 뜨거운 물을 맞고 있는 것. 화장실 문을 닫고 잠시 혼자 있는 것.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것들이 자유라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이 서운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저는 말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평범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날카롭게 나갔고, 별뜻 없는 말에도 쉽게 예민해졌습니다. 우울함과 스트레스, 아이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이 쌓이면서 저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가장 가까운 곳에 남편이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가장 친한 친구였고,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알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줬으면 했습니다. 내가 부탁하기 전에 먼저 알아차려줬으면 했고, 가끔은 아이보다 나를 먼저 걱정해줬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함께한 사람이라도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모두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그때의 저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 몰라주는지 서운했고, 서운함이 쌓이면 화가 났고, 화가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남편이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미워했던 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편이었는지, 잠들지 못했던 수많은 밤이었는지, 거울 속 달라진 내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의 삶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는지.

아마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남편이었고, 가장 많이 기대했던 사람도 남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가장 많은 서운함을 쏟아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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