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낳기 전까지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은 저에게 그다지 반가운 날이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면서 매년 이맘때면 작은 행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만들지 계획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전시용 크래프트를 만들고, 작은 선물을 챙기는 일까지 모두 교사의 몫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도 은근히 신경 쓰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기념일이었지만, 당시의 저에게 어머니의 날은 작은 행사 하나를 무사히 끝내야 한다는 부담이 먼저 떠오르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언젠가 나도 어머니의 날에 축하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린이집 교사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어머니의 날을 비롯한 여러 기념일과 그에 따라오던 일적인 부담에서도 자연스럽게 벗어났습니다. 다시 어머니의 날을 별다른 의미 없이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되면 SNS에는 어김없이 행복한 어머니의 날을 보낸 사람들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이곳의 전통대로 침대에서 아침 식사를 받고, 꽃과 카드, 작은 선물을 받은 모습도 자주 보였습니다. ‘아, 이 집도 어머니의 날을 제대로 보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사진 몇 장을 구경하고는 별생각 없이 화면을 아래로 넘겼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날은 여전히 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고, 어느 3월에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조리원의 낭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저와 남편은 조금의 지식만 가진 채 신생아 육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준비하기는 했지만, 막상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나니 둘 다 아무 감도 없는 초보 부모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12시간씩 나누어 교대로 아이를 돌봤습니다.
밤낮의 구분도, 시간이나 요일의 감각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도 당연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루틴이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 새로운 변화에 멘붕이 왔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에 허우적대다 보니 점점 더 깊고 빛이 없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나 봅니다.
그리고 그날은, 제가 처음으로 맞는 어머니의 날이었습니다.
사회와 거의 단절된 채 살고 있던 때였는데, 아마 며칠 전 SNS에서 어머니의 날과 관련된 게시물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넘겼을 사진들이 그해에는 조금 다르게, 꽤 의미 있게 보였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날을 맞는구나. 늘 다른 사람들의 기념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날이, 처음으로 나의 날이 되었습니다.
나도 처음으로 어머니의 날을 축하받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쁘게 차려입고 브런치를 먹으러 나갈 여유도 없었고, 카드나 선물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남편이 저를 보면 한 번 안아주면서 “Happy Mother’s Day”라고 말해줄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 정도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정오가 되었고, 육아 교대 시간이 되어 남편이 거실로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한 시간 전쯤 잠에서 깨어 있었습니다. 다만 교대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침대에 누워 SNS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이 어머니의 날이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거실로 나왔을 때, 저는 자연스럽게 그 한마디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기다렸습니다. 오히려 ‘뭔가 큰 서프라이즈를 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거실로 나왔고, 제가 기다리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침대에 누워 SNS를 보고 있었고, 무엇보다 남편은 가족과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자랐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습니다. “응, 알지. 오늘 Mother’s Day잖아.” 알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덜 서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깜빡했다고 했다면 이해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응, 맞아. 그래서 뭐 할 말 없어?” 저는 그 정도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But you are not my mother.”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잖아.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니, 내가 당신 엄마라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가 됐잖아.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였습니다. 물론 말 그대로만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엄마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 말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가 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두 달 전 우리는 함께 부모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빠가 되었고 저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하루를 반으로 나누어 아이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제가 지난 두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남편보다 가까이에서 본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어머니의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가 처음으로 이 날을 맞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게 참 서운했습니다.
그날 이후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화를 냈는지, 무슨 말을 더 했는지, 남편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희미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But you are not my mother.”
어떻게 나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서로의 작은 변화도 꽤 잘 알아차리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무엇 때문에 힘든지 같은 이야기도 매일 자연스럽게 나누었습니다. 피곤해 보이면 왜 그런지 물었고,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그런 여유가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남편도 힘들었을 겁니다. 갑자기 아빠가 되었고,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신생아를 혼자 돌봐야 했습니다. 좋아하던 비디오 게임도, 넷플릭스를 보며 여유롭게 먹던 저녁도, 주말 오전이면 늦잠을 자던 일상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물론 남편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이전의 일상을 잃었고, 당장 제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의 남편을 떠올리면, 그의 관심이 점점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 언제 잘 수 있는지, 언제 자신의 육아 시간이 끝나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끝까지 듣지 않거나, 제 대답을 중간에서 끊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그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테니까요.
그래도 저는 서운했습니다. 나도 똑같이 힘든데. 아이를 낳은 뒤 몸도 마음도 이전과 같지 않았고, 저 역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맞는 어머니의 날만큼은 조금 달랐으면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그날만큼은, 가장 가까이에서 지난 두 달을 함께 보낸 남편이 먼저 저를 생각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기다렸던 “Happy Mother’s Day”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축하해 달라는 것도, 고생을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잠깐이라도 남편이 다시 저를 봐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던 예전의 우리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