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식탁 위에 놓인 미역국 한 그릇

아이를 낳기 전까지 우리 부부에게 문화 차이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둘 중 어느 쪽의 나라도 아닌 또 다른 나라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보낸 뒤 결혼했고, 이미 둘 다 새로운 나라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에서도 어느 한 사람의 문화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자라온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깊이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맞춰 살면서 둘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서로 다른 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재미있거나 신기한 정도였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전혀 다르게 생각하면 “거기서는 그렇게 하는구나” 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문화는 음식이나 언어, 명절 같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산한 사람을 돌보는 방식에도, 가족이 서로를 챙기는 방식에도, 그리고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방식에도 각자가 자라온 문화가 깊숙이 들어 있었습니다.

미역국 한 그릇에도 설명이 필요했다

출산 후 도움을 받아 지인에게 미역국을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때라 남편에게 미역국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가져온 미역국을 보고 저는 한동안 그릇을 바라봤습니다.

아주 작은 종지 같은 그릇에 미역국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미역국을 가져다 달라고 했으니 적당한 그릇을 찾아 담아온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는 그 작은 그릇 하나가 그렇게 서운했습니다.
나에게 출산 후 미역국은 단순히 여러 음식 중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몸을 회복하면서 먹는 음식이었고, 그 안에는 산모의 몸을 챙긴다는 의미도 자연스럽게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그런 배경이 없었습니다. 미역국이 왜 특별한지, 출산 후 왜 먹는지, 어느 정도를 먹는지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설명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때의 저에게 무언가를 하나하나 설명할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기를 돌보는 것만으로 하루의 에너지를 다 쓰고 있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왜 이것을 필요로 하는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 부탁에는 설명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줄래?”보다 “이거 해줘.”라는 말이 많아졌고, 이유를 이야기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말하게 됐습니다. 남편에게는 그것이 부탁보다 지시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었던 차이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서로 다른 문화가 재미있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어도 굳이 답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출산 후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출산 과정에서부터 몸을 회복하는 방식, 산모를 돌보는 방식,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뒤 먹이고 재우고 안아주는 것까지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우리가 알고 있던 ‘당연한 것’이 달랐습니다.

특히 아이에 관한 일이 되면 저는 훨씬 예민해졌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방식과 다른 행동을 보면 먼저 걱정이 됐고, 걱정은 쉽게 짜증과 서운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는 참 다르구나” 하며 웃었던 차이가 어느 순간 “왜 그렇게 하지?”가 되었고, 때로는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돼”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부모님과 연락할 때면 그 차이는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재우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서로 달랐습니다. 한쪽에서는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 다른 쪽에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며 살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만큼은 달랐습니다. 출산과 육아 앞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보다 각자가 자라면서 보고 배운 가족의 모습과 기억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둘이서만 결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가 각자 자라온 가족의 방식과 기억,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것들까지 함께 우리의 생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아이가 아주 어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잠도 더 잘 자게 될 것이고, 우리도 부모라는 역할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예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은 조금씩 익숙해졌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이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 남편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도 했고, 하루 동안 있었던 사소한 일을 굳이 이야기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같이 있어도 편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씩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말을 하면 또 기분이 상할까.
또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끝나는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하지 않게 됐습니다.
남편도 비슷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싸우지 않기 위해 말을 줄였고, 말을 줄이면서 조금씩 어색해졌습니다.

가장 친했던 사람이 어색해졌다

우리 사이에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래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멀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달라졌습니다.

아이 이야기는 여전히 많이 했습니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몇 시에 잤는지,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부모로서 나눠야 할 이야기는 오히려 이전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이야기는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힘든지, 남편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들을 어느 순간부터 묻지 않게 됐습니다.

가끔 둘만 있게 되면 그 변화가 더 잘 느껴졌습니다.
10년 넘게 함께하면서 가장 편했던 사람인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그게 조금 슬펐습니다.

예전에는 침묵조차 편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그 침묵이 가끔 어색했습니다.

문화 차이보다 오래 남은 것

아이를 낳은 직후에는 우리가 힘든 이유가 문화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차이를 겪는 동안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서운함이 있었고, 짜증도 있었습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감정들은 어느 날 크게 폭발하고 사라지는 대신 우리 사이에 아주 조금씩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낳고 일 년이 훨씬 지난 뒤에도 가끔은 예전의 우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것도 조심하지 않고 이야기했던 때.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면 재미있어했던 때. 상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으면 짜증보다 궁금함이 먼저 생겼던 때.

그때의 우리는 서로를 지금보다 더 잘 알아서 편했던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서로에게 편하게 물어볼 수 있어서 가까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크게 보이기 시작했던 국제부부의 문화 차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보다 서로에게 익숙했던 편안함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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