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침대 옆 바닥에 나란히 놓인 매트리스와 이불

언제부터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자지 않게 되었는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크게 싸운 날도 아니었고, 각방을 쓰자고 합의한 적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이가 나빠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태어났고, 밤마다 누군가는 아이 곁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였던 우리의 잠자리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처음에는 잠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밤에 조금만 덜 깨면 다시 예전처럼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금만’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울음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수면교육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아이가 울어도 바로 안아주지 않고 조금 기다려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울겠지만 익숙해지면 혼자 잠드는 법을 배울 거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유튜브에서 본 이야기들을 제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자꾸 우리 아이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는 밤잠을 자면서 네 번, 다섯 번, 많게는 열 번 가까이 깨는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습니다. 작은 변화에도 쉽게 잠에서 깼고,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수면교육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특히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디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울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이 긴장했고, 때로는 수술한 부위가 다시 당기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다른 방에서 울고 있는데도 그 소리가 바로 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의 생각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사람이었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방법을 처음부터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울었습니다.
조금 기다렸습니다.
남편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정말 괜찮아지는 걸까. 지금 안아주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참지 못해서 이 방법이 실패하는 걸까.
하지만 아이의 울음은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아이는 토했습니다.
정성 들여 먹인 모유와 분유를 그대로 토해냈고, 잠들기는커녕 더 흥분해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침구를 정리하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방법으로는 못하겠다.
그것이 우리 집에서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수면교육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코슬립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저는 수면교육 대신 아이와 함께 자자고 했습니다.
밤에 그렇게 자주 깨는 아이라면 차라리 가까이에서 자고, 울면 바로 달래주고, 다시 재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어린아이 곁에서 엄마가 함께 자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코슬립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라온 곳에서는 부모가 어린아이와 함께 자는 모습을 거의 접해보지 않았고, 아이는 자기 침대에서 자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제가 “그냥 아이 옆에서 같이 자면 안 될까?”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단순히 두 가지 수면 방법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우는 아이 곁에 있는 것이 당연했고, 남편에게는 아이가 혼자 자는 법을 배우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누가 맞고 틀린지를 떠나,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당연함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느 쪽도 아닌 방법을 택했습니다.
하루씩 번갈아 아이를 맡기로 했습니다.

오늘 밤은 나, 내일 밤은 남편.
그렇게 하면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제대로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재우는 방법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우는 밤에 부모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부터 달랐습니다.

내 차례가 아닌 밤에도 나는 깨어 있었다

제가 맡은 밤에는 아이 가까이에서 잤습니다.
남편은 자기 차례인 날에도 아이와 함께 자지 않았습니다. 옆방으로 가서 자기 침대에서 잤습니다. 아이가 울면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나 아이에게 가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그 방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건너편 방에서 자고 있는 저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오늘은 내 차례가 아니니까.
곧 일어나겠지.
남편이 가겠지.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울음만 집 안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어두운 방에 누워 옆방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기다렸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결국 제가 일어났습니다.

아이에게 가서 안아주고, 다시 재우고, 조용히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밤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차례가 아닌 날에도 완전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오늘은 들을까.
아이가 또 깨지는 않을까.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결국 내가 가야 하나.

아이를 하루씩 번갈아 맡았지만, 이상하게 제 잠은 하루씩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몸은 다른 방에 누워 있어도 제 귀는 계속 아이가 있는 방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이 옆에서 자는 밤보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밤이 더 불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을 보냈습니다.

그냥 내가 매일 잘게

어느 날 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이제 그냥 내가 매일 아이랑 잘게.”
큰 싸움 끝에 나온 말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따지지도 않았고, 남편에게 화를 내며 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쳐서 내린 결정에 가까웠습니다.
남편은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었고 저는 하던 일들을 접고 아이와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매일 밤을 맡겠다는 말을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부터 우리의 교대는 끝났습니다.
아이 침대 옆에 제 매트리스를 깔았습니다.
밤이 되면 아이를 재우고 저도 그 옆에 누웠습니다. 아이가 뒤척이는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깼고, 울기 시작하면 바로 손을 뻗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잠은 더 짧고 얕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보다 편했습니다.
누군가 일어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됐고, 지금 내가 가야 하는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아이가 울면 제가 일어나면 됐습니다.

그 단순한 사실이 오히려 저를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밤마다 아이 곁에서 자면서 아이의 작은 습관도 더 많이 알게 됐습니다. 언제 뒤척이다 다시 잠드는지, 어떤 울음에는 바로 안아줘야 하는지, 어떤 때에는 손만 잡아줘도 다시 잠드는지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잠은 부족했지만 아이와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한 제 마음도 이상하리만큼 더 깊어졌습니다.

그때는 그것만 보였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우리는 헤어졌다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한참 뒤에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아이 곁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동안, 남편과 저는 조금씩 멀리 떨어져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각방을 쓰자고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따로 자자고 결정한 날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 침대 옆에 제 매트리스가 생겼고,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처음에는 며칠이었고, 그다음에는 몇 주였고, 어느새 몇 달이 되었습니다.
밤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자리로 갔습니다.
저는 아이를 재우러 갔고, 남편은 자기 방으로 갔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끝나면 같은 침대에서 만났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별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각자 휴대폰을 보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그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하루가 끝나면 만나는 대신 헤어졌습니다.

“잘 자.”
짧게 인사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아이의 부모로 만났습니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뭘 먹일지, 기저귀는 갈았는지, 오늘 어디를 가야 하는지.
우리에게 할 이야기는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부부에서 룸메이트가 되는 데는 큰 사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부부 사이가 멀어진다면 무언가 큰일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심하게 싸우거나, 서로에게 크게 실망하거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누군가 집을 나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같은 집에서 살았고, 같은 아이를 키웠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빨래를 하고, 다음 날의 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습니다.

다만 잠드는 곳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에 서로에게 하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같은 집을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각자 자기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집을 정리하고, 다음 날을 준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함께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부로서 함께 있는 시간은 더 적어졌습니다.
그렇게 생활은 점점 효율적으로 나뉘었습니다.

누가 아이를 볼지, 누가 장을 볼지, 누가 씻을 동안 누가 아이를 맡을지.
해야 할 일은 잘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우리 사이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아이 침대 옆에는 제 매트리스가 있습니다.
밤이 되면 저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눕습니다.
처음 그 매트리스를 깔았던 날에는 이것이 우리 부부의 생활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오늘 밤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기를 바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조금 덜 불안하게 잠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씩 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싸워서 각자의 방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려고 하루하루 각자의 자리를 지키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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