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다만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2주 동안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거의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혼자 만들어 먹고, 아무 소리도 없는 집에 앉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습니다. 명상을 하고, ASMR을 듣고, 가끔은 Energy Hz 같은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들을 찾아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그런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생각도 깊고 걱정도 많은 편이라 혼자 있는 시간은 저에게 심심함이 아니라 회복에 가까웠습니다.
다행히 제가 하는 일도 그랬습니다. 아주 조용한 곳에 앉아 오래 생각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었습니다.
고요를 찾는 것은 제게 취향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날부터 제 하루에서 고요한 시간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아이가 울면 달래고,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고, 다시 재웠습니다.
겨우 한 번의 루틴이 끝난 것 같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다섯 번.
저는 원래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아이의 울음과 장난감 소리, 제 목소리까지 끊임없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반응해주면서도 제 안에서는 에너지가 계속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에너지를 다시 채울 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출산 전 달고 살았던 ASMR도, 명상 음악도 2년 반이 넘도록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뭘 좋아했던 사람인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녁마다 시리얼을 먹었습니다
출산 후 첫 석 달 동안 우리 부부의 저녁 메뉴는 거의 늘 시리얼이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휴대폰으로 몇 번 누르면 음식이라도 왔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는 한식 밀키트 하나를 사려 해도 차로 30분을 가야 했습니다.
그럴 체력도 없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배가 고픈지도 잘 몰랐습니다.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면 그제야 단것이 미친 듯이 먹고 싶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버텼으니 이 정도는 먹어도 된다는 보상처럼 초콜릿이나 달콤한 것을 찾았습니다.
몸의 리듬은 완전히 엉망이 된 것 같았습니다.
밤이 되어도 쉽게 잠들지 못해 멜라토닌을 먹고서야 겨우 눈을 붙이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드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아이는 다시 울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아기는 그냥 좀 울게 둬.”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제왕절개 수술 자리가 아파왔습니다.
이미 다 아문 상처인데도 그랬습니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아이의 울음에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아이를 안고, 달래고, 다시 재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단순히 육아에 지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울음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밥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몇 분.
예전에는 너무 흔해서 그것이 행복인지도 몰랐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2년이 넘었습니다.
아이는 많이 컸고 저도 엄마라는 역할에 꽤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가끔 아주 조용한 순간이 찾아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오히려 어색합니다.
명상을 좋아했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좋아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루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떠올립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그리워하는 것은 거창한 자유가 아닙니다.
여행도 아니고, 술자리도 아니고, 아이가 없던 시절도 아닙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잠깐 조용히 앉아 있던 예전의 나입니다.




